보여지는 것, 그 자체.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. '문화적 의미'를 담으려 하지 마라.
아직 이르다.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.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.
* 의미는 없다. 오로지 사물만이 존재할 뿐이다. - 윌리엄스 W. C. Williams.
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. 그러나 삶 전체를 통틀어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은
이 머무름과 반대 선상에 있었다.
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: 빛, 공간, 거리 사이의 관계, 공기, 울림, 리듬, 질감, 운동의 형태, 명암, …사물 그 자체…
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미하든 아직은 사회적이지도, 정치적이지도, 성적(性的)이지도 않다.
(여송연은 아직 여송연이 아니다)
이름을 주지도, 상표를 붙이지도, 재 보지도, 좋아하지도, 증오하지도, 기억하지도, 탐하지도 마라. 그저 바라만 보아라.
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.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. 카메라는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
빛을 기록할 뿐이다. 그것이 전부다.
그것의 의미를 경험한다는 것, 몇 초에 볼과하더라도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며 그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.
언어가 배제된 목소리, 음악의 선율, 도자기, 추상화, 그것의 현존, 그것의 무게, 그것의 존재와 나의 존재의 경이로움,
사실 그 자체의 신비.
아마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남은 길이의 반만큼을 끊임없이 가고 또 가야 되는 제논의 역설과 같다. 영원을 향한 노정의
절반에 도달했을 때 남은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하늘의 은총이 필요하다.
그 틈새를 건너뛰게 도와줄 무언가를 희망하며 나는 계속 사진을 찍는다.
** 필립 퍼키스의 '사진강의 노트' 에서 발췌.